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습니다
그 결과 프로메테우스는 매일매일 산 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아야만 했으나, 인간은 그 불 덕분에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불을 갖게 된 후의 인간의 삶이 그러했듯, 오펜하이머가 만든 핵폭탄도 인류의 역사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던지게 됩니다.
미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던 오펜하이머는
지도 교수였던 패트릭 블래킷과의 불화 및 적성에 맞지 않는
실험물리학 공부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닐스 보어의 권유로 독일 괴팅겐 대학교로 학적을 옮겼고,
이론물리학과 양자역학을 공부하며 그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게 됐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오펜하이머는 유부녀였던 캐서린과 관계를
이어온 끝에 결국 결혼을 하게 되는데,
오펜하이머의 전 연인이었던 태틀록과 결혼한 캐서린까지 오펜하이머와 가까운 모두가 공산주의자였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오펜하이머 역시 공산당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공산당과는 교류하는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한편 독일에서 처음 핵분열을 관찰하고 1년 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합니다.
미국에서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육군 대령 레슬리 그로브스를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임명했고, 독일보다 먼저 핵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오펜하이머를 연구 담당자로 데려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
오펜하이머는 로스앨러모스라는 지역에 마을 단위의 거대한 연구소를 만들고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을 불러 모아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오펜하이머는 끝까지 과학자들을 리드하며 연구를 계속해서 이어갔고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핵폭탄을 완성하기도 전에 독일은 항복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저항은 계속되었기 때문에 맨해튼 프로젝트는 이어질 수 있었죠.
결국 포츠담 선언 직전, 이들은 최초의 핵폭탄 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을 수행했고,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이 나게 됐습니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들이 힘을 모아 성공적으로 핵폭탄을 만들었지만,
이 무기 사용에 대한 모든 결정권은 오펜하이머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나서야
오펜하이머는 그 사실을 뉴스를 통해 알 수 있었죠.
일본이 항복하자 로스앨러모스의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고,
오펜하이머 역시 성공에 들뜬 듯 사람들 앞에서 연설했지만 곧 남모를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오펜하이머의 공을 치하하는 트루먼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죠.
대통령 앞에서 자신의 손에 피가 묻어 있는 것 같다고 죄책감을 내비치는
오펜하이머에게 트루먼은 불쾌함을 내비쳤고, 곧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에 대한 모든 실권을 빼앗기고 맙니다.
오펜하이머의 청문회
이후 오펜하이머는 핵 확산 방지를 주장하며 수소폭탄 개발 역시 반대합니다.
이 과정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함께했던 동료 과학자들 몇몇 과도 갈라서게 됐죠.
그러나 오펜하이머의 이런 입장 변화는 과거 공산당과 교류했던
그의 과거와 맞물려 미국 정부의 의심을 사게 됐습니다.
거기에 더해 원자력 위원회에서 함께 일했던 루이스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망신주고,
거기에 더해 아인슈타인과 자신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오펜하이머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펜하이머를 공산주의자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워서 원자력과 관련한 분야에서 영영 숙청하려고 했죠.
1954년 결국 오펜하이머의 보안 인가를 갱신하기 위한 청문회가 열립니다.
이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는 그동안의 행적을 낱낱이 밝히며
공산당과 자신이 관련이 없음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청문회 위원들은 오펜하이머의 과거를 들춰내며 그와 아내를 굴욕적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를 믿고 무고함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진술해 준 동료들도 있었으나,
텔러와 대부분의 동료들이 오펜하이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서
오펜하이머는 결국 보안 인가 갱신을 허락받지 못하게 됩니다.
오펜하이머가 스트로스의 전략에 패배하고만 것입니다.
스트로스의 청문회
시간이 흘러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 역시 장관에 임명되기 위해 청문회를 거치게 됩니다.
보좌관과 스트로스는 이 청문회가 단순히 통과의례일 뿐이라고 여겼고,
실제로 청문회는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죠.
그런데 이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과학자가 증인으로 등장해서 발언을 했고,
과거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에게 한 공격은 개인적인 원한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합니다.
결국 스트로스는 청문회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상원 인준 표결에서도 3표 차이로 탈락하고 맙니다.
오펜하이머는 이기적인 인물이고,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과 만나서 대화를 나눈 이후,
아인슈타인이 자신을 무시했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스트로스에게
실상을 알게 된 보좌관 역시 실망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기자들 앞에서 애써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서는 스트로스는 결국 스스로 자멸하고 맙니다.
결국 세월이 흘러 1963년이 돼서야 오펜하이머는 존슨 대통령에서 엔리코 페르미 상을 받습니다.
이미 오펜하이머가 현실 정치에서는 영향력을 잃은 후였지만,
그의 명예는 일정 부분 회복되었습니다.
자신을 배신했던 동료 텔러와도 화해하지만,
오펜하이머의 아내 키티는 텔러와 악수를 거부하며 지난날 그의 배신행위를 용서하지 않았죠.
연쇄반응의 시작
영화의 마지막은 과거로 돌아가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의 모자를 주워주며
나누었던 대화를 보여주면서 끝이 납니다.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과 자신의 사이를 이간질시켰다고 오해했던 그 순간이기도 합니다.
오펜하이머는 아인슈타인에게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할 때쯤에,
그에게 계산식을 보여주며, 우리들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기억하고 있다고 대답하는 아인슈타인에게 오펜하이머는 말합니다.
이미 그것이 시작된 것 같다고 말이죠.
이에 아인슈타인은 얼굴을 굳히고, 마침 다가오던 스트로스도 무시하고 지나치며 그 자리를 떠나갑니다.
오펜하이머가 만든 원자폭탄을 시작으로
많은 나라들이 원자폭탄을 개발했고, 핵무기 경쟁에 뛰어드는 핵확산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는
거대한 연쇄반응을 가져왔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고,
수없이 많은 핵무기가 세상을 뒤덮는 환영을 보고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립니다.